베트남 사파,하노이(2019)

베트남의 위대한 지도자,호치민의 흔적이 있는 하노이 호치민 박물관과 호치민 묘.

네이버 블로그" 여행모으기" 낫티 2019. 9. 8. 00:12

호아저씨로 불리우는 베트남의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


낫티가 어렸을때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받은 기억이 있다.

베트남이 공산화 되어서 자유를 잃어버린 수 많은 보트피플이 망망대해 위에서 떠돌고 있다.

베트남은 지옥으로 변했다.

호지명(호치민)은 북한의 김일성과 같은 빨갱이의 수괴..

그래서 대한민국의 자유의 군대가 그런 일촉 즉발의  월남의 공산화를 막으려고 미군과 함께 정의의 응징을 하기 위해서 파병을 한다던 그 시절..

독립군 때려잡던 일본군 장교가 대통령을 하던 그 시절..

그리고 새마을 운동의 그 시절..우리는 그렇게 역사를 배웠었다.


근데..그런 교육의 허상이 사실대로 밝혀 지는데는 불과 오십년도 걸리지를 않았다.

이 얼마나 무모하고 허무 맹랑한 일방적 세뇌 교육이었던가..?

북한의 일방적 사상 교육과 별 다를바가 없었던 어두웠던 한국의 1970년대...그런 시절을 우리도 살았었다...



1890년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서 식민지 조국의 서러움과 가난을 온 몸으로 겪어내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호치민(본명 응우엔 아이쿠옥)은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서 프랑스 증기선의 견습 요리사로 프랑스로 넘어가게 된다.

그 후 이어진 밑바닥 인생....하인도 해보고 견습생도 해보고 그러면서 영국 미국으로 옮겨 다니던 그는 식민지 조국의 해방을 최우선 과제로 공산주의 혁명에 심취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1920년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이 되기에 이르는데.....



모든 베트남의 지폐에는 단 한명..호치민 밖에는 없다.


근데...호치민의 공산주의는 러시아나 중국의 공산주의와는 좀 달랐다고 한다.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 공산당의 활동은 오로지 조국의 독립에 그 모든 목적이 맞추어져 있는 민족주의가 가장 중요한 정신적인 근간이었으며 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이후 미국의 지원도 과감히 받게 되는 유연성을 갖기도 한다는것..물론 이후에 미국이 먼저 배신을 했지만..ㅜㅜ

이 베트남의 공산주의는 오로지 인도차이나를 지배하는 제국주의(당시 프랑스)를 축출하여 이웃나라들인 라오스나 캄보디아와 함께 같이 독립혁명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는데..이는 차후 인도차이나 공산당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그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부르조아 민족주의는 물론이고 그 당시 민족 자결주의를 얘기한 미국의 대통령 윌슨에게도 편지를 보내기에 이를 정도로 독립을 위한 일이라면 모든 세력과 함께 손을 잡는것을 마다 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그에게 꿈같은 날이 왔다.


1945년 일본의 패망..

그 틈을 탄 인도차이나 공산당의 하노이 점령....

그렇게 베트남엔 독립의 기회가 찾아왔으니...9월 2일 바딘 광장에서 그는 독립선언서를 낭독을 하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주위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그렇게 베트남이 독립을 하게끔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프랑스는 그 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며 1946년 하이퐁에 함포 사격을 가하며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키게 되고..그렇게 베트남과 프랑스와의 전쟁은 9년간 이어지게 된다.


결국 1954년 휴전 협정이 성립이 되었고 그 결과로 이어진 제네바 협정에서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이 되고 마는데...

그 후 인도차이나를 사이에 둔 열강들의 이해 관계..베트남은 그 당시만 해도 완전하게 그들로 부터 독립을 이루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엔 1964년 우리가 잘 아는 통킹만 사건으로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 베트남을 다시 침략을 하게 되고....그 후 10년간 베트남에선 정말로 씻을 수 없는 민족간의 전쟁이 또 다시 이어지게 되는것이다.



유튜브로 정리를 하였다.



지금은 사라진 그 당시 미국을 업었던 남쪽의 자본주의 국가.. 베트남 공화국( 월남국) 국기


그리고 현재의 통일 베트남의 국기이다.


베트남 전쟁이야..뭐 우리도 객관적일수가 없는 입장일 것이다.

그 당시 월남의 편으로 미국과 함께 월남전에 참전을 해서 같이 총부리를 겨누었으니...그 당시엔 호치민은 적의 수괴였고..베트콩은 적군이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주는 우표 한장..


1969년 월남 대통령의 방한 기념 우표...

호치민이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져 있던 북쪽의 월맹과는 다르게 남쪽의 월남은 부정부패가 난무를 하는 부패한 자본주의 국가의 전형이었다.

돈을 위해서는 나라를 팔아먹는것 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는 매국노들의 천국이었고...결국은 언젠가는 망하는게 예정이 되어 있었던 한심한 국가였는데..미국은 인도차이나에서의 기득권 확보를 위해서 이 한심한 국가를 무한정 지원을 했고..그렇게 10년의 전쟁을 이끌고는 결국은 그 이전의 프랑스에 이어서 또 다시 베트남에게 두손을 들고 만다.

그리고 민족적 처단의 대상물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보트 피플이 되어서 여기 저기를 떠돌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당시 부패한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월남국의 수도인 사이공은 그 이후에 호치민으로 도시 이름도 완전히 바꾸게 되었던 것~!


전 세계에서 유래없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와 맞짱을 떠서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 낸 호 아저씨..


어쩌면 그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공산주의를 배워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강력한 민족주의자였던 호치민.

오로지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통일만을 바라보며 싸웠던 인물



하지만 그는 결국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9년 9월 2일에 심장병으로 사망을 하고 만다.

주석으로 재위할 당시에도 그의 소박한 생활과 검소한 습관은 모든이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그런 그의 사망소식에 전 세계의 많은 언론들이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애도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그런 정신은 그의 사후에도 베트남인들의 마음속에 죽지않고 계속 살아있게 되었으며....그것이 결국은 세계열강들을 모두 물리친 완전한 승리로  조국의 독립을 이루어낸 밑바탕이 되었던것...


하지만 그 당시 호치민의 사후에도  베트남의 역사는 순탄치가 않았다.

이웃나라의 캄보디아에서는 킬링필드의 학살을 자행하던 친중국 성향의 크메르루즈가 세력을 잡고 있던 시절이었는데..미국을 이긴 베트남의 인도차이나에 대한 영향력 확장을 두려워 하던 중 지금의 푸꾸옥을 먼저 공격을 하는 악수를 두게 된다...

그 이후 그렇게 치고 밖고 하던 두 나라는 결국 베트남의 군대 15만명이 캄보디아로 진군을 하여 수도인 프놈펜을 점령을 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되었던것...

그런데 이번에는 크메르 루즈와 친한 사이였던 중국이 국경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1978년 또 전쟁을 일으킨다.

지금의 윈난성 국경 지역이다.

그리고는 1979년 전면적으로 베트남을 공격을 하기에 이르는데....


이 당시 베트남의 주력 부대는  캄보디아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중 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양쪽에서 두 나라와 전쟁을 수행을 하여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을 하게 되었던것.

하지만 베트남군은 이미 미국을 이긴 군대였다.

캄보디아와의 남쪽 전쟁은 물론 중국과의 북쪽 전쟁에서도  양쪽 전쟁을 동시에 다 승리로 이끌게 되는데....

이래서 이때부터 베트남군에게는 무패의 군대라는 자랑스런 칭호가 뒤따르게 되었으니..

최초..프랑스와의 긴 전투에서도 그들은 패하지 않았으며 그 후 미국을 위시한 한국 호주,태국,뉴질랜드,필리핀 연합군에게도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킬링필드의 원흉인 크메르 루즈군도 캄보디아로 진군을 해 끝장을 내기에 이르며 그와 동시에 벌어진 북쪽 국경의 중공군의 전면전에서도 승리를 하게 되니....세상에 이런 막강의 군대가 또 어디에 있을까..?

세계의 역사속에 두고 두고 회자될 이야기가 아닐수가 없겠다.

그렇게 베트남은 오랜시간 주변의 열강들과 모두 맞장을 떳으며..그리고 다 이겨내었고...결국엔 지금의 자주 독립국인 베트남을 이루어 내었다.



베트남 민족이 영원히 사랑을 할수 밖에 없는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


그의 막강했던 군대가 그가 떠난뒤에도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바딘 광장앞의 호치민 묘.


그가 근무를 했던 공간들..


이 소박한 공간에서 그는 전세계를 상대로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내었다.




베트남의 전쟁의 역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가 있었다.

물론 전쟁에선 무기나 물자..군인의 병력수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왜 싸워야만 하는냐의 역사적인 합당한 이유와 정당성..그리고 그것에 뒤따르게 되는 각각의 사기와 각오이며 또한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을때는 그 어떤 천하무적의 군대들이 침략을 해와도 다 무찌를수가 있다는 사실...


그 어떤 막강한 강대국들도  민족의 자주적인 독립과 통일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그래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그 베트남의 그 군대를 도저히 이길수가 없었던 이유이다.


그리고 그렇게 베트남 민족을 하나로 묶은 호치민은 정말로 위대한 지도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