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파,하노이(2019)

베트남 하노이의 전쟁 박물관에서 만난 월남전과 베트남

네이버 블로그" 여행모으기" 낫티 2019. 9. 10. 20:16

베트남의 역사에서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베트남 전쟁(1960년~1975년)


하노이를 여행을 하다보면 꼭  가봐야 할곳이 있다.

바로 베트남 전쟁 박물관 ..

이곳은 베트남 군사 박물관이라고도 불리우는 곳인데.. 베트남이 승전국의 입장에서 그리고 미국은 침략자로써 그리고 패전국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 전세계에서 몇 안되는곳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유튜브로 정리를 하였다.



전쟁 박물관으로 가던 도중 길거리 과일쥬스 가게에서 잠시 휴식도 취해본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현재의 베트남 거리를 마음껏 느끼고 구경을 해 보는 재미..


자유 여행의 최고의 특혜...내 마음대로 쉬어가기...


거리 뒷 골목의 묘한 풍경..


상세한 안편?? 이건 또 무슨 뜻일까?


한국의 물건처럼 교묘히 위장을 하긴 했는데..?


베트남에서의 한국 브랜드의 위상은 가히 대단하다.

물론 요즘은 한류가 대세라서 그 어느 나라를 가나 메이드인 코리아가 많은 인기가 있는건 사실이지만 베트남은 특히나 유별나다.


아예 짝퉁 물건들까지 한국의 것이라는 표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ㅋㅋ

그냥 한국이라는 그 자체가 최고의 브랜드로써 사랑을 받고 있는 베트남...



베트남의 전쟁 박물관이다. 입장료는 4만동(2천원)



이곳에 있는 하노이 깃발탑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이 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1812년 응우옌 왕조시대에 관측을 위해서 지어진 관측탑


수많은 전쟁을 치른 베트남이지만 특이하게도 이 탑은 무사히 파괴가 되지 않고 살아 남았다.


미군의 비행기 잔해로 조형물을 만들어서 전시해 놓은곳.


베트남 전쟁의 이면을 들여다 보자면 그 이야기는 호치민이 활동을 하던 19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와 일본의 오랜 식민지 시절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공산당을 만든 호치민..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점점 더 세력이 약해지는 일본...


호치민은 그 당시 인도차이나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과 꾸준히 게릴라전을 펼치며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는데...1945년 일본이 결국은 연합군에 지고 패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호치민은 하노이를 점령..1945년 9월 2일 바딘광장에서 드디어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을 하기에 이르게 되는데...

하지만 오랫동안 베트남을 지배했던 프랑스 제국주의가 이를 인정을 할 수 없었을터..

1946년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키며 호치민과 베트남을 놓고 맞짱을 뜨기에 이르게 되니 이 전쟁이 바로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되겠다.


이 전쟁은 1954년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제네바 협정을 계기로 휴전이 조인이 되며 남북으로 베트남은 분단이 되게 되는데..이는 마치 한국 전쟁의 스토리와도 비슷한데...

제네바 협정에 따라 국제 감시하에 1956년 자유 총선거도 치루기로 하였으나 1955년 미국을 지원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나던 남쪽의 월남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며 토지개혁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 그러면서 거센 민중들의 도전을 받게 되니...이 시민들의 조직이 이후 베트콩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것..

그러면서 남쪽에는 반공법이 생기고...이어지는 탄압과 충돌..결국엔 1960년 베트콩과 남부 자본주의 군대 사이의 전면전으로 양상이 발전을 하게 된것이다.

이게 베트남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도 계속 이어지는 남부 베트남의 정치적 혼란..쿠테타..그러다 미국이 결국엔 1964년 그 유명한 통킹만 사건을 만들어내어 북베트남을 폭격을 하고 베트남에 55만명의 병력을 파병하게 된다.

그리고 북쪽의 호치민 군대도 결국은 전면전으로 전쟁에 뛰어들게 되는데...



외세들의 부추김에 의한 민족 상잔의 전쟁..그것이 바로 베트남 전쟁의 본질이다.


미국 전쟁 역사의 흑역사였던 베트남 전쟁.


그 막강한 화력으로도 베트남 군대를 결국은 이기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엔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냉전의 싸움이 지속이 되던 시기였고 미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태국과 함께 남베트남을 자본주의의 마지막 전선으로 지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베트남을 견제를 하기 위해서 자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하던 킬링필드의 주범인 크메르루즈까지도 지원을 하는 씻지못할 무리수도 두게 된다.

하지만 베트남의 군대는 지지 않았고..이후 캄보디아까지 진군을 하여 프놈펜을 점령, 캄보디아의 야만의 시대를 끝내며 친베트남 정부를 만들고 베트남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1969년 미국은 결국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였고 1973년 월맹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에도 베트남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이 빠진 베트남에서 월남은 끝까지 호치민의 월맹과 싸웠고..결국엔 1975년 완전히 항복을 하기까지..그렇게 베트남 전쟁은 계속이 되었다.



남의 나라의 통일 전쟁에 간섭을 하며 뛰어든것에 대한 댓가는 참담했다.


그들에게는 단순한 정치적 사상을 뛰어넘는  커다란 명분이 있었다.


소녀들이 총을 들 정도로 왜 싸워야만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이유가 있었고..


그렇게 조국에 자식들을 바쳐낸 어머니들의 눈물이 있었다.


지금도 베트남에선 자식들을 전장으로 보낸 수 많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높게 평가를 한다.

그리고 그 수 많은 어머니들을 독립 유공자로 지정을 해서 나라에서 연금을 주며 돌보고 있고 함께 역사적 평가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전 어느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한국의 여인들과 어머니들은 남성 중심의 유교적 관습으로 인해 역사속에 이름도 남지 않았다고 방송을 하는것들을 보면서 참으로 베트남과 많이 비교가 되어 씁쓸함을 느꼈던적이 있는데....


결국은 위기에 처한 조국과 민족을 구하는것은 말 없이 뒤에서 자식들을 전선에 내어 놓는 평범한 어머니들이라는 사실...

우리도 꼭 이부분은 잊지 말아야 할듯 하다.



다시는 이러한 말도 안되는 전쟁에 우리들의 소중한 자식들이 희생이 되지 않기를...


외세를 이겨내고 자주 통일을 이룬 베트남은 지금 경제발전을 위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전쟁은 이겼지만 그 후로 이어지는 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오랫동안 가난하게 인도차이나의 최빈국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베트남..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을 시행하며 경제 발전을 이룩하려고 몸부림치던 그들의 노력이 최근에는 더욱 더 많은 힘을 받고 있다.

그리고 분명히 공산국가이지만 폐쇄적인 북한이나 쪼잔하게 인터넷등을 차단하면서 통체를 하는 중국과도 또 다르다.


베트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특히 한때 적이었던 우리와는 각별하다.

우리와 베트남은...한때 강대국들로 인해 비슷한 입장을 겪었던 나라들이니만큼..정말로 서로가 잘되어서 동북아의 용으로 그리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또 다른 용으로 무한정 함께 승천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