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티의 여행 잡담들

2일간 시위로 얼룩졌던 태국의 이야기

네이버 블로그" 여행모으기" 낫티 2009. 4. 14. 04:31

4월 11일은 파타야에서.. 13일은 방콕에서 큰 역사들이 있었던 태국

 

2009년도 쏭크란을 앞둔 태국은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느낌이다.

오랫동안 지리하게 시위를 이어 오던 탁신의 지지 세력인 너뻐쳐가 결국은 4월 11일 파타야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아세안 3국의 정상 회담을 무산 시킨뒤에...

결국은 비교적 온건한 이미지 였던 연립 정부의 수상인 민주당의 아피씻 총리가 좀처럼 꺼내 들지 않았던 강경 진압이라는 최후 카드를 13일에 꺼내 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4월 14일 새벽 현재..방콕의 시위대는 거의 다 진압이 되었다.

 

뉴욕타임즈의 보도 자료 사진을 참조로 요 며칠 사이의 급박했던 일련의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자.

 

길고긴 시위로 탁신의 복귀를 희망하던 너뻐쳐 시위대는  4월 11일 ...

태국의 동쪽의 휴양 도시인 파타야로 집결을 하였다.

4월 11일엔 파타야에서 아세안 3국의 정상 회담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4월 11일 이명박 대통령과 태국의 아피씻 총리의 만남..

 

4월 12일..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된 후의 파타야의 로열 클리프 호텔의 컨벤션홀의 모습

 

4월 11일 시위대들은 현재의 연립 정부의 수장인 아피씻을 태국의 지도자로 인정을 할수 없다며

급기야는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게 된다.

 

참고로 여기에서 왜 이들이 아피씻을 인정하지 않는지 그 이 이유를 간단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태국만의 특이한 정치 상황에 기인을 하게 되는데....

 

우리들은 몇년전에 태국에서 일어났던 쏜티 장군의 무혈 쿠테타를 기억을 할것이다.

그 쿠테타의 이전에는 태국의 수상은 탁씬 씨나왓이라는 인물 이었다.

 

대중적인 인기를 추구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선호하는 그는 서민들의 인기는 있었지만 그 반대로 부정부패가 좀 심하였다.

하지만 그는 또한  현재의 국왕 다음으로 서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는것이 또한 태국의 현실이었고  그의 높은 인기는 결국은 왕실의 후계 구도를 위협을 하는 인식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은 오랜 기간 태국의 기득권을 지켜왔던 왕권파는 막대한 자금과 인기를 동시에 가진 탁신을 늘 견제를 해야 겠다고 예의 주시를 하였었고....결국은 하나의 수를 던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당시의 쿠테타였던 것이다.

결국 탁신은 그 날 이후로 하루 아침에 주변국들을 옮겨 다니며 방랑을 하는 신세가 된었던 것.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그 다음에 전국적으로 실시된 총선에서....

국민들은 결국은 국민들의 최고의 힘인 투표권으로 쿠테타 당시에 해산이 되어 버렸던 탁신의 당인 타이락타이당의 후신인 국민의 힘당을 또 다시 태국의 제 1당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쿠테타에 의해 쫒겨난 탁신이었지만 국민들의 투표로 인해 다시금 그의 위치를 견고히 다지게 되는 파란 만장한 스토리를 겪게 된다.

 

결국은 의회의 다수당인 국민의 힘당은 사막총리 체체를 가지고 탁신의 지지 세력을 다시금 견고히 다지게 되고..이 당시에 잠시 태국에 귀국을 하는 절묘한 광경을 연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탁신에 대한 칼을 뽑아든 왕권파가 그리 호락 호락 물러날 수만은 없었을터.......이때 등장을 한 것이 바로 노란색 시위대인 판타밋이다.

우리는 이들의 시위를 2008년 12월 쑤안나품 공항 점거의 사건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싸막도 결국은 이들의 시위와 복잡한 권력 행위로 인해 물러나게 되었다.

 

근데 참으로 재미 있는것이 싸막이 물러난 것은 물론 노란색의 시위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료를 받고 출연을 한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어 옷을 벋게 된것인데...

그는 쿠킹을 하는것을 무척이나 좋아 하였으나 결국은 그곳에서 출연료를 받은것이 개인적인 사익 행위라는 논란이 붉어 지면서 헌법 재판소의 판결을 받고 옷을 벗게 되었던 것...

쉽게 말해 이렇듯 다소 유치한듯한  방법을 동원해서 라도 왕권파는 탁신의 세력이 총리에 있는것을 막아야만 하는것이 그 당시의 절대 절명의 숙제였던것이다.

 

결국 그 뒤를 이은 인물은 쏨차이라는 인물인데.....그 역시도 탁신의 혈연 관계인 인물이었으니...

의회에서는 아무리 재임을 하는 현 총리의 옷을 벗겨도 결국은 그 당시의 의회 구도에서는 탁신의 세력이 다수당인 까닭에 또 다시 그의 세력들이 총리에 오르게 되는 의회민주주의의  법적인 한계를 태국의 정치 상황은 뛰어 넘지를 못했던 것이다.

 

또한 맨날 민주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민주적 의사 표현 수단인 국민투표를 하고 총선거를 하면 뭣하겠는가?

태국 국민들은 번번히 계속 탁신에게 표를 몰아 주는데....ㅜㅜ::

왕권파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머리가 아플수 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동원이 되었던 방법이 최후의 보루였던 수안나품 공항의 점거였던 것이다.

근데 왜? 하필 수안나품 공항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의아해 할것이다.

 

탁신의 정책중에서 국민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는 부분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끊임없는 그의 정치 행위와 장미빛 공약이 핵심이라는것..

3년전 오픈한 태국의 수안나품 신공항도 끊임없는 비리 공사의 구설수에 올랐지만 그 역시도 결국은 탁신의 작품이었던 것이니.....

 

또한 그곳에서 운영을 되는 타이 에어아시아도 역시 탁신이 대주주인 회사이고...

판타밋은 결국은 그런 탁신의 흔적들이 가장 많이 묻어 있는 수안나품 국제 공항을 상징적인 시위의 마지막 승부수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해서 지금의 탁신을 지지하는시위대가 절대로 판타밋과 똑같이 공항을 점거할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판타밋은 그 당시에 탁신 정책의 대표적 상징물인 수안나품 공항을 점거하면서 동시에 탁신 세력의 부정 부패를 전 세계에 홍보를 하는 2중적인 효과를 기대했던 것이다.

결국은 그 스토리 대로 마지막 탁신의 세력이었던 쏨차이 총리마저 이 수안나품 공항의 점거로 옷을 벗고야 말았던 것이고....

그때에 새롭게 총리로 추대가 된 사람이 바로 현재의 연합 정부의 수장인 민주당의 아피씻 총리였던것...

 

쉽게 말해 태국의 현재의 정치 상황은 이미 국민 투표권이 그 힘을 잃어 버린 상황이라는것....

쿠테타도  한번 해 봤지만 결국은 근본적인 정권 교체의 해결책이 안되는것이었느니..

방법은 국민의 여론처럼 연출이 가능한 시위대를 동원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그때 판타밋이 사용을 해서 성공을 했던 그 방법을 지금은 탁신의 세력들이 똑같이 사용을 했던것인데..

문제는..?  이번엔 총리가 강하게 나왔다는 것이다.

 

뭘 이용해서?

바로 태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들을 이용해서....

 

이번 시위대는 결국 4월 11일 파타야의 회의장을 점거를 하는데는 성공을 했지만 그 반대로 강력 진압이라는 명분을 왕권파에게 내주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것이다.

 

이때만 해도 이들은 승리의 기쁨에 즐거워 했을것이다.

 

모두들 아피씻의 정상회담을 가로막은 것에 환호를 했고....

 

한중일의 정상은 결국 헬기를 타고 파타야를 빠져나가는 수모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날..시위대를 향한 강제 진압을 포기한 아피씻은 아주 결정적인 명분을 얻게 된다

한중일 정상에게는 미안했지만..

그 반대로 정국에서는 강경 진압이라는 초강수를 사용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셈...

쉽게 말해 1보 후퇴, 2보 전진인 셈이다.

 

4월 11일 아피씻은 많은 고민을 했을것이다.

 

그리고 4월 13일...최근에는 유례가 없었던 강경 진압이라는 카드가 방콕에서 이루어 지게 된다.

결국 탁신의 시위대는 국제 회의장을 점거함으로 해서 스스로의 함정을 판꼴이 되어 버렸다.

 

2009년 4월 13일의 방콕의 거리는 아마도 태국 역사에서 또 한번의 상처로 기억이 될듯 하다.

 

화염병도 등장을 했던 13일의 방콕....

 

너뻐쳐의 집행부는 파타야에서 회의장을 점거할 당시 이런 부분의 후폭풍을 맞을것을 각오했어야만 하였다.

각국의 정상들을 쫒아낸 결과가 이렇게 강제 진압으로 나타나게 된것이다.

 

결론은..

태국은 현재..투표권과 기존 권력과의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태국만의 특이한 정치적 변혁기를 겪고 있는것이 될것이다.

그렇다고 투표권으로 당선이 되는 탁신 역시도 부정 부패에 있어서 만큼은 너무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탁신이 그 부분만이라도 조금만 더 투명했다면 정말로 태국의 역사를 새로 쓰는 큰 인물이 될수도 있지도 않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부정 부패는 결국은..

정치인에게 가장  달콤한 사탕임과 동시에 그것은 반대파에게 가장 큰 공격의 빌미를 제공을 하는 사약과도 같은 것이니...

정말로 큰 정치인들은 그 금권이라는 부분에서 자유로워야만 할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결국은 그 금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지금의 태국도... 그리고 우리들도 힘이들고 마음이 아픈것일게다...

태국이나 우리들이나 모두들..희망찬 미래에는 국민들을 상대로 절묘한 게임에만 열중을 하는 정치꾼이 아닌 국민 모두를 떠 안아 줄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진정한 정치인을 만나기를 희망해 본다.

 

그리고 이 리뷰는 낫티의 개인적인 태국 정치에 대한 소견일뿐이니..교과서처럼 절대로 맹종은 하지 말찌어다~~!!

 

( 사진 출처-뉴욕타임즈에서 퍼왔음..쏘리~)